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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BBC 방송

알버트 칸의 놀라운 세계 (The Wonderful World of Albert Kahn) [9부작]

 

다큐소개 : 이 다큐는 2007년도에 나왔으며 Veronika Hyks가 나레이션을 맡았습니다. BBC Four에서 5월달과 11월달에 2번에 걸쳐서 방영되었습니다. 1908년, 프랑스의 은행가이자 사업가인 알버트 칸 (Albert Kahn, 1860.3.3 ~ 1940.11.14)이 사진사들을 채용해서 20년 넘게 백여 시간 분량의 영상과 컬러사진 72,000장이라는 방대한 양의 세계의 순간들을 보고하는 것입니다. 20세기 초반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해주고 있으며 50여개 이상의 나라에서 친숙한 일상들을 상세하게 기록한 것입니다. 칸의 사진사들은 친숙한 일상을 상세하게 기록했으며 사람들이 일하고 노는 모습을 보고 고대 의식과 생존을 위협하는 변화의 힘을 기록했으며 가장 중요한 시대적 사건을 기록하기도 하였습니다. 칸의 카메라들은 제국의 몰락과 국가의 탄생 및 시대를 아우르는 사건 그리고 역사상 최악의 전쟁으로 치닫는 유럽의 모습등을 담았습니다. 이 영상과 사진들은 이스라엘 탄생 전후와 팔레스타인, 영국의 지배가 쇠퇴하던 아일랜드와 영국 통치의 정점에 있던 인도의 모습, 1차 세계 대전의 황폐함을 보여주는 등 다방면에 걸친 세계적인 사건 사고들을 보여줍니다. 칸이 이 특별한 사업을 시작한지 100년후, 그의 사진들은 20세기에 대한 독특한 통찰을 보여줍니다. 이 놀라운 이미지들은 세계를 보는 칸의 창문입니다.

The Archive of the Planet was the brainchild of the millionaire French banker and philanthropist Albert Kahn. Between 1908 and 1930, he used his vast personal fortune to generate what is now generally acknowledged to be the most important collection of early colour photographs in the world. At the time Kahn embarked on this project, colour photography was still in its infancy. It was only a year before the Archive was created that the legendary French inventors Auguste and Louis Lumière had marketed the autochrome - the world's first user-friendly photographic system capable of taking true colour pictures.

Almost straight away, Kahn acquired one. It's not difficult to see why Kahn was so beguiled: the autochrome system produces images of mesmerising beauty. As an idealist and an internationalist, Kahn believed that he could use this system to promote peace and greater understanding among the world's cultures. So he spent a fortune to hire photographers and send them to more than 50 countries all over the world. Altogether, they shot more than 72,000 colour pictures (as well as about 100 hours of film footage) recording everything from religious rituals and cultural practices to momentous political events all over the world.

They took the earliest known colour pictures in countries as far apart as Vietnam and Brazil, Mongolia and Norway, Japan and Benin. As pet projects go, this was very ambitious - and vastly expensive. Yet undaunted by the cost, Kahn bankrolled this enterprise for more than 20 years. Kahn's photographers undertook these intrepid expeditions without the global transit systems we take for granted today. Often, they arrived in these countries at crucial junctures in their history. For example, they recorded the collapse of both the Austro-Hungarian and Ottoman Empires - and the birth of completely new states in Europe and the Middle East. During World War I, Kahn's photographers observed soldiers as they cooked their meals and laundered their uniforms behind the front lines at The Battle of Verdun. They watched the world's most powerful men when they convened for the post-war negotiations at Versailles.

No doubt Kahn expected to have the financial wherewithal to sustain it indefinitely. But events delivered a hammer-blow to his plans. At the start of 1929, Kahn was still one of the richest men in Europe. But by the end of the year the Wall Street Crash had reduced the financial empire of one of Europe's most successful financiers to rubble.

Yet by then, Kahn had already amassed one of the most important photographic collections in the world. A century after he launched his project, Albert Kahn's dazzling pictures put colour into what we almost always think of as an exclusively monochrome age.

 

1부. 세계의 미래상 (A Vision of the World) : 20세기가 시작할 무렵, 파리는 지구에서 가장 멋진 도시중 하나였다. 프랑스 수도의 시민들에게는 이 시기는 위대한 낙천주의 원대한 사고와 식견의 시대였다. (파리는 빛의 도시였고 패션과 소비의 중심지였으며 아방가르드 예술의 원천이기도 했죠. 아름다운 시대였어요. 지적, 예술적 활동이 넘쳐 났고 뭐든 가능한 분위기였죠.) 절호의 기회를 잡을만큼 대담한 사람들이 파리의 증권 거래소에서 부를 축적했다. 그 중 한 명이 은행가이자 사업가인 알버트 칸이었다. 칸은 나무로 둘러싸인 파리 외곽의 저택에 살았다. 그곳에서 결혼도 하지 않고 자녀도 없이 은둔 생활을 했다. 프랑스 상류층이 사는 곳으로 이사를 했지만 대중에게 더 알려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유명한 남자라면 보통은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내겠지만, 알버트 칸은 일부러 무대 뒤에 머물렀던 것 같아요.)

 

2부. 세계의 사람들 (Men of the World) : 1908년 11월, 증기선 '함부르크 아메리카'호가 셰르부르를 떠나 대서양 너머 뉴욕으로 향했다. 배에 탄 사람은 백만장자이자 박애주의자인 알버트 칸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몇 해 전, 칸은 투기적인 해외 투자로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부자가 됐다. 이제 칸은 세계 여행을 시작하려 한다. 사업과 개인적 기쁨을 목적으로 하는 여행이었다. 이 여행은 이익을 남길 사업과 개인적 기쁨을 목적으로 하는 여행이었다. 이 여행은 이익을 남길 사업을 탐색할 기회가 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칸은 세상을 보면 마음이 넓어진다고 믿었다. (칸은 유럽을 떠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고 믿었어요. 기대의 지평 안에 갇혀 있으면 우리가 사는 나라는 영원한 신비로 남게 되죠) 칸에게 이 여행은 컬러 사진을 찍어볼 수 있는 최첨단 카메라 기술을 실험해 볼 기회였다.

 

3부. 위기의 유럽 (Europe of the Brink) : 1908년, 파리 외곽의 집에서 프랑스 금융가이자 박애주의자인 알버트 칸은 '행성 보관소'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듬해 그는 처음으로 전문 사진가를 고용하면서 본격적으로 이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오귀스트 레옹은 때떄로 엽서 사진을 찍었다. 그는 꼼꼼하고 카메라를 잘 다뤘다. 그 후 20년동안 칸은 새 오토크롬 기술과 함께 레옹을 유럽 전역으로 파견했다. 레옹의 초기 사진 중 몇 장은 프랑스 북동쪽의 그림 같은 르와르 계곡을 담고 있다.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 그는 퓌드돔 지방도 여행했다. 프랑스 중부에서 가장 큰 주 중 하나였다. 퓌드돔에는 고대의 화산 언덕이 산재해 있다. 오늘날 주도인 클레르몽페랑은 번화환 산업도시로 미쉐린 타이어 사의 본거지이다. 하지만 백 년 전에는 장날에만 활기를 띄는 조용한 변두리 도시였다.

 

4부. 병사들의 이야기 (The Soldiers' Story) :  1914년 8월 3일 독일이 프랑스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그 다음날, 수천명의 독일군이 중립국인 벨기에를 침공했고, 2주간의 교전 끝에 프랑스에 도착했다. 프랑스는 지체 없이 대응했고, 전쟁을 위해 150만 명을 징집했다. 이후 4년간 프랑스는 750만 명을 더 훈련시켜 전쟁에 투입했다. (프랑스는 징병제였고, 프랑스 시민 중에서 병사를 징집했어요. 배경과 상관없이 군복무를 해야했죠. 징병을 삶의 일부로 봤어요. 자연적인 이치였고 통과의례나 다름 없었죠. 모든 젊은이들에게 국방의 의무가 있었어요.) 파리 외곽에 있는 저택에서 프랑스의 금융가 알버트 칸은 큰 충격에 빠져 있었다. 칸은 평화주의자로서 전쟁에 경악했지만, 애국적인 프랑스인으로 자신이 국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전쟁 전 6년간 칸은 세계 문명을 사진으로 기록하기 위해 전세계로 사진사들을 보냈다. 하지만 이제 이 웅장한 프로젝트를 보류해야 한다. 대신 자신이 가진 자원을 전쟁터의 프랑스군을 기록하는 데 투입하기로 했다.

 

5부. 민간인들의 이야기 (The Civilians' Story) : 20세기 초반, 알버트 칸은 전세계의 삶을 담은 사진 보관소를 만들고 싶어했다. 하지만 사진 프로젝트의 촛점을 변화시킬 사건이 발생했다. 1914년 8월 1일, 독일은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러시아의 동맹 프랑스는 즉시 병사들을 징병했다. (1914년, 내무부 장관은 프랑스 전역에 380,000명의 시장에게 전보를 보냈어요. 이 시장들은 나가서 가장 출입이 많은 건물 현관에 총동원령 공고문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이틀 후에 선전포고를 받았죠. 따라서 총동원령은 가족 붕괴의 신호라서 무섭고 비극적이라고 여겨졌어요.) 당시 프랑스 지방은 사람들 대부분이 농사를 짓고 있었다. 수십 년간 듣지 못했던 소리가 여름의 적막을 깨트릴 터였다. (지역의 성직자는 즉시 종루로 올라가 종을 울렸겠죠. 중세 시대에는 비상 사태 때 종을 울렸어요. 특히 전쟁일 경우에요. 이 전쟁은 유럽 전역을 태우고 있었죠.)

 

6부. 전후의 유럽 (Europe After the Fire) : 1918년 12월, 파리 사람들은 독일과의 휴전을 축하하고 있었다. '타임'지의 통신원은 파리가 미쳤다고 보도했다. 도시 전체에 환호 소리와 국가가 울려퍼졌다. 칸의 카메라맨들은 대로로 나가서 환호의 장면들을 기록했다. (영상이 정말 멋져요. 휴전 조약으로 인해 억제됐던 감정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죠. 경제적 곤궁과 사랑하는 이들을 잃는 고통을 4년 반이나 겪었어요. 그런 순간을 견뎌낸 사람은 많지 않아요.) 수도에서는 흥청거리는 사람들이 독일군한테 빼앗은 총기와 비행기를 거리에 늘어놓았다. (승리를 표현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적의 무기들을 고향으로 가져오는 거에요. 패배한 적의 병사들을 상징하기도 해요. 하지만 잔인하게 시체를 전시하진 않죠. 전쟁이 끝났음을 더 정적이고 절도 있게 표현했어요. 전리품을 전시하는 건 어떤 심리라고 할까... 삶을 되찾은 기쁨이 폭발한 거죠.) 하지만 파리 사람들이 거리에서 기뻐할 때, 몇 킬로 밖에서는 섬뜩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7부. 중동 : 국가의 탄생 (Middle East the Brith of Nations) : 20세기 초, 프랑스의 백만장자 알버트 칸은 독특한 사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는 현대성이 세계의 고유한 문화를 박멸하기 전에 세밀한 일상들을 기록하고 싶어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칸의 사진사들은 오스만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을 수없이 방문했다. 이곳에서는 술탄이 4세기 이상 중동을 지배해왔다. 하지만 왕조가 쇠퇴하고 독일 편에 서기로 결정함으로써 오스만 제국은 붕괴됐다.  승리한 연합군은 제국의 영토를 마음대로 결정지었다. (영국과 미국은 전세계에서 특히 이 지역을 중요하게 여겼고 자기들끼리 어느 부분을 차지할 지 결정했어요.) 중동 지역의 지도는 여러 구획으로 나뉘며 새로운 국가들로 재편되었다. 이로 인해 오스만 제국의 통치 하에 수백 년 동안 나란히 살아온 이슬람교, 기독교, 유대교 국가들의 운명이 변화될 터였다. 칸은 역사적 분기점에 있던 중동 지역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했다.

 

8부. 극동 제국탐험 (Far East Expeditions to Empires) : 1914년, 지구의 삶에 관한 사진 보관소를 만들려던 칸의 계획은 진전을 보이고 있었다. 칸은 파리 외곽의 저택에서 인류 문화의 풍부함과 다양성을 기록하기 위해 사진사들을 전세계로 보내고 있었다. 같은 해 5월, 프랑스 식민 군대의 장교였던 레옹 부지가 보관소로 찾아왔다. 그는 칸의 야심찬 계획을 듣고 참여하고 싶어했다. (레옹 부지는 프랑스 사진 협회로부터 상을 받을 정도로 재능있는 아마추어 사진사였어요. 그런 사람이 자원하다니 기쁜 일이었죠. )부지가 배치된 베트남은 프랑스의 극동 식민지 중 가장 중요한 나라였다. 프랑스는 1850년대부터 베트남을 점령했지만, 이 나라를 장악하기 위해 오랫동안 고군분투했다. 19세기가 끝날 무렵 이웃한 라오스와 캄보디아도 프랑스의 보호령이 됐고 세 나라는 합쳐서 인도차이나로 알려졌다.

 

9부. 세계의 끝 (The End of a World) : 1922년, 배 한 척이 프랑스의 르 아브르 항구를 떠나 북대서양을 횡단하는 4,800km의 여행을 시작했다. 배에는 알버트 칸을 위해 독특하고 위험한 임무를 맡은 한 카메라맨이 타고 있었다. (칸은 갈만한 충분한 이유가 없다면 아무도 가지 않을 아주 먼 곳에 가서 사진을 직겠다는 멋진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 중 하나가 영국 식민지인 뉴펀들랜드였어요. 1949년까지는 캐나다 땅이 아니었죠. 이곳에서 발단한 산업은 목재산업과 어업 두 가지뿐이었어요.) 프랑스는 16세기부터 뉴펀들랜드 일부를 점령했었는데 1920년대에는 생피에르 섬만 남게 됐다. 하지만 어업권은 계속 유지했고, 매년 약 7천명의 프랑스인들이 이 위험한 바다에서 몇 달씩 대구를 잡았다. 1922년 칸의 카메라맨인 '뤼시엥 르 생'도 여기에 참여했다. 그는 이 여행을 일기에 자세히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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